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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사태

이동훈 실장 01025956359 2024. 2. 5. 01:14

광우병 사태

2008년 4월 18일 정부는 광우병 위험 부위의 수입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을 중단할 수 없는 등 협상 내용이 일방적이고 졸속으로 알려지면서, 광우병 공포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제기하는 MBC의 <PD수첩> 방영을 계기로 국민의 불안과 우려는 증폭되었다. 정부의 변명과 미봉책에 대한 반발로 연인원 100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3개월여 지속되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쇠고기 검역 기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중단된 것은 2003년 12월이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광우병 의심 사례가 발견되자,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와 육가공품의 검역을 중단해 사실상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2006년 초 ‘30개월 미만 소의 뼈를 제거한 살코기’만 허용하기로 하고 수입을 재개했으나, 검역 과정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어 해당 쇠고기가 전량 반송되는 사건이 수차례 발생했다.


한미 양측은 2007년 10월 1차 협상을 했으나, ‘모든 종류의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가축의 부위 중 프리온 질병을 전염시킬 가능성이 높은 부분, 쇠고기의 경우 뇌, 눈, 척수, 창자 등)과 내장, 꼬리 등의 부산물은 받을 수 없고, 30개월 미만이라는 연령 제한 규정도 유지하겠다’는 우리 측과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미국 측의 대립으로 합의 없이 끝났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8년 4월 18일, 정부는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을 전격 발표했다. 그 결과, ‘1단계로 30개월 미만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2단계로 미국이 동물사료 금지 조치를 강화하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에도 곧바로 수입 금지 조처를 내릴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 수입만을 허용한 2006년의 수입위생조건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국민의 건강은 뒷전으로 둔 채, 검역 주권을 포기했다며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광우병은 구제역과 달리 전염병이 아니며, 광우병 위험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거나 ‘복어 독을 제거하듯 광우병 소도 위험 물질만 제거하면 안전하다’고 발언하는 등 국민의 불안과는 큰 인식 차이를 보였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일제히 협상의 백지화와 책임자 문책을 촉구하고 나섰고, 일주일 만에 100여 만 명이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서명 운동에 참여하는 등 파문은 급격히 확산됐다.


MBC <PD수첩> 방영과 촛불집회의 확산


4월 29일 MBC의 시사 보도 프로그램인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방영했다. 방송은 미국 내에서 역사상 최대인 6만4000톤의 쇠고기가 리콜되는 등 자국 내에서조차 안전성을 의심받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가장 허술한 조건에 수입 협상을 맺었음을 지적했다. 주저앉은 광우병 의심소를 도축하는 장면, 인간 광우병 여성의 죽음 등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5월 2일 청계광장에서는 처음으로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같은 날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야당과 일부 언론,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를 ‘반정부 선동’으로 규정하고 정면 대응했다. 5월 8일에는 17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결성되었고, 청와대는 <PD수첩>을 허위 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 정면 대결로 치달았다.


5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으나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사과보다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 촉구에 비중을 두었다. 대통령의 담화와 집회 강제 진압은 오히려 여론을 더욱 자극했다. 시위가 잦아들기는커녕 시위의 이슈를 이명박정부의 다른 정책들에 대한 반대로 확산시켰다. 6월 들어 ‘72시간 연속 촛불집회’, ‘100만 촛불대행진’ 등 시위는 더욱 확대되었다. 결국 정부는 미국 측과 ‘추가 협의’를 진행했으나, 실질적으로 검역 주권과 국민 건강권을 확보하는 데는 여전히 미흡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여 6월 2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확정 고시했다.


국민 정서와 인식 외면한 정부의 일방통행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은 배경부터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협상을 시작한 지 고작 일주일 만인 4월 18일, 한미정상회담 하루를 앞두고 전격 타결된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얻어 내기 위한 선물용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검역 과정에서 작은 뼛조각이 발견되어 전량을 반송 조치하던 정부가 갑자기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까지 수입을 허용한다는 것을 국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광우병의 위험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어떤 설명이나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국민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국민의 인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짚어 보면 첫째, 정부는 일방적으로 결정 사항을 전달하려고 함으로써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쇠고기의 수입 확대는 국민 개개인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위험의 정도를 정확히 알리고 어느 수준의 위험까지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정부는 ‘선 논의, 후 결정’ 대신 ‘선 결정, 후 통보’의 일방적 방식을 선택했다. 양방향적 모델로 전환하기 위해 힘쓰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광우병 위험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FTA의 경제적 중요성을 반복하여 강조할 뿐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둘째, 정부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민에 대한 신뢰 구축과 증진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커뮤니케이션, 특히 위험 커뮤니케이션에서 메시지에 대한 수신자의 평가는 정보 제공자의 신뢰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1979년 미국의 TMI(Three Mile Island)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 언론인을 포함해 주위의 불신을 받는 대변인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크게 호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광우병의 위험 수준과 수입 범위 확대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만을 반복해서 주장했다. 국민에게 믿음을 주고 신뢰를 쌓아가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셋째, 정부는 국민이 과학 지식에 무지하다는 전제하에 정확한 정보 전달을 통한 설득의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초기 일부 언론의 선동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에 휩쓸린 것도 그러한 ‘무지’가 한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괴담을 유발한 것은 오히려 정부의 정보 비공개 때문이었다. 사태가 확산되자 국민은 인터넷을 통해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나 외국의 정책 현황 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전파했다. 국민은 단순한 정보 수용자가 아니라 나름의 판단 근거를 가지고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주체라는 점을 외면했다.


신뢰 증진 위한 정책 커뮤니케이션 전략 필요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국내에서 광우병 발생으로 인한 사망자는 한 명도 없다. 그러나 2008년 4월 이후 3개월여 동안 겪었던 사태로 큰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장된 광우병 공포가 몰고 온 불필요한 혼란일 뿐인가? 광우병은 아직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치료제도 없다. 위험의 불확실성이 높고, 통제가 불가능하며, 경우에 따라 회피할 방법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이 수치에 근거한 위험 정도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개적인 논의를 통해 어느 정도의 위험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정부는 전격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범위 확대를 결정했다. 광우병 위험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으며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국민은 과학적 내용을 잘 모를 것이니 정부를 믿고 이 결정에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민은 심각한 위협이라고 판단했기에 크게 반발했다. 정부는 광우병의 위험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정서는 철저히 외면한 채,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만을 강조했다. 협상 백지화를 요구하는 촛불시위는 100일 이상 지속됐고, 정부에 대한 불신과 다른 정책의 비판으로까지 확대됐다.


국민을 향한 정부의 정책 커뮤니케이션이 완벽하게 실패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일방적으로 정부가 결정하고 따르라는 방식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20년에 걸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발생한 격렬한 사회적 갈등은 단적인 사례다. 양방향적 소통은 당장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여 준다.


정부가 강조할 것은 수치나 외국의 사례가 아니다. 해당 위험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국민은 주장의 내용 자체보다 주장을 펼치는 개인이나 집단의 신뢰도에 기초해 주장의 진위를 판단하는 만큼 신뢰의 구축과 증진을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